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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두손리의 노란 단발머리 '캔디' 미지(박보영), 그리고 서울의 공기업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쌍둥이 언니 미래(박보영). 이란성 쌍둥이도 아니고, 일란성 쌍둥이도 아닌, 서로 너무나도 다른 미지와 미래는 한 얼굴이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살아냅니다.
그리고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바꿔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괜찮아, 너만의 속도로 살아도 돼'
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서른, 늦은 시작은 없다지만...'
드라마는 염분홍(김선영)의 뼈아픈 충고로 시작합니다.
"서른은 그렇게 늦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게 이른 나이도 아니야.
진로 탐색보단 결정을 할 나이라는 거야, 서른은."
사회 통념상으론 맞는 말처럼 들리는 이 충고는, 사실 미지가 겪었던 실패와 좌절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그녀의 마음을 흔듭니다. 과거 육상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꿈을 접고 3년간 방에 갇혀 살았던 미지에게 '적당한 때'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왔을까요?
<미지의 서울>은 사회가 정해놓은 '적당한 때'에 맞춰 살아가려다 오히려 길을 잃고 무력해지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미지의 옛 짝사랑 상대인 호수(박진영)는 '1등'의 길을 따라 변호사가 됐지만, 과연 이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미래의 회사에 잠시 일하게 되는 딸기밭 주인 세진(류경수) 역시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인물이죠. 이들은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궤도를 달리다가 잠시 멈추거나, 아예 궤도를 이탈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들의 방황을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미래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코너에 몰리자, 미지는 쌍둥이 언니를 위해
'잠깐만 바꿔 살자'
는 제안을 합니다. 이 도망은 단순히 회피가 아닙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용감한 선택입니다. 미지가 서울에서 회사원 흉내를 내고, 깍쟁이 미래가 두손리에서 밭일을 하는 동안, 이들은 서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박보영의 1인 2역 연기는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똑 닮은 얼굴이지만 미지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미래의 묵묵하고 속앓이하는 표정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시청자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서로의 역할을 연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실상 1인 4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서울에 간 미지는 미래의 삶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두손리에 온 미래는 땀 흘려 일하는 미지의 삶이 얼마나 값진지를 깨닫게 됩니다.
드라마는 '그냥 쉬었음' 청년들이 50만 명을 넘은 현재의 사회상을 반영하며, '그냥'이라는 것은 없다는 듯이 청년들의 속내를 깊숙이 파고듭니다.
'살려고 숨은 것이고, 아무리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라고.'
이 대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은둔 생활을 하던 미지에게 외할머니 월순(차미경)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이 드라마가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입니다. 세상의 시선에 지쳐 잠시 멈춰 선 이들에게 '숨는 것도 용감한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 드라마의 온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농촌'은 힐링의 공간만이 아니다
<미지의 서울>은 그간의 '도시에 지친 주인공이 시골에서 힐링'하는 클리셰를 비틀어 두손리를 관념적인 힐링의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이곳은 세진이 딸기 농사를 망쳐 골머리를 앓고, 미지가 일당 높은 밭일에 눈을 빛내는 현실적인 '농촌'입니다. 미화되지 않은 서울과 두손리, 그리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더욱 큰 공감과 위로를 안겨줍니다.
드라마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쌍둥이의 엄마 옥희(장영남), 로사식당 주인 김로사 시인(원미경) 등 중장년 캐릭터들의 서사도 섬세하게 풀어내며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건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 큰 척'하지만 사실 모두가 저마다의 싸움을 치르고 있는 우리네 삶을 보여주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른다."
이 드라마는 '미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오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의 한 발을 내디뎌보자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아가지 못했더라도, 오히려 후퇴했을지라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게 됩니다.
'캔디' 미지의 밝은 모습 뒤에 숨겨진 상처와 '똑 부러지는' 미래의 모습 뒤에 숨겨진 고통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미지의 서울>은 이렇듯 불완전한 우리에게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속도로 가든, 그 자체로 괜찮다'고 따뜻하게 속삭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오는 29일 종영을 앞둔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 드라마 정보
- 장르: 로맨틱 코미디, 성장, 힐링, 휴먼, 일상, 사회고발
- 방송 시간: 토 · 일 / 오후 09:20 ~
- 방송 기간: 2025년 5월 24일 ~ 2025년 6월 29일
- 방송 횟수: 12부작
- 출연: 박보영, 박진영, 류경수 外
- 시청 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주제, 언어, 모방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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